-
그에게 언제부터 매혹당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풍성하고 윤택해 보이는 화사한 르느와르를 좋아했다가 미술관에서 마주하고 충격에 빠진 고흐의 별을 사랑하다가 부드러운 빛깔을 입고서 무섭게 치달리는 증기기관차를 내 가슴에 꽂았던 터너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있었다. 금빛으로 금갈색으로 흑갈색으로 때로는 파랗게 발갛게 노랗게 에머럴드빛으로 그는 출렁이며 내게 다가왔다. 거실 텅 빈 벽면에 싸구려지만 잘 프린트된 '아티제의 호수'가 잔물결을 일렁일렁 일으키며 걸려있다. 레이디들의 단호하거나 슬픈 얼굴이 있어 휘황찬란한 옷과 배경은 넘쳐 보이지 않고, 잔잔하게 여백 없이 점점이 찍어낸 보석 같은 풍경은 내 마음에 단단한 안정감을 준다. 오늘도 호숫가 찰랑이는 물결소리가 푸르게 흘러나온다.
20190407 클림트 '키스', 벨베데르 궁전 국립미술관 2년 전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르 궁전을 방문하는 그날 아침 나는 유난히 들떴고 옷차림에도 신경이 쓰였다. 그의 작품 실물을 만난다는 것에 속이 간질간질할 정도로 설렜다. 그의 '키스'와 풍경화가 줄 아찔함을 너무 기대했었던가. 바글바글 여행객과 뒤섞이고 이어폰으로 전달되는 설명은 부산함과 뒤엉켜 몇 분 주어진 만남은 실망스러웠다. 관람객들로 가려져 작품 하나를 온전히 볼 수 있는 단 몇 초의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인파를 조금 벗어나 맞은편 에곤 쉴레를 마주 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그의 작품 앞에서 순서를 기다려 함께 사진을 찍어왔지만 그림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날 아침부터 너무나 설레고 설레었던 내 마음과 웅성댔던 홀만 기억으로 남았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1' 프린트를 빈 시내 기념품점에서 사 왔다. 짐가방 속에서 구겨질까 조심하였건만 매트액자 귀퉁이가 살짝 구겨진 자국이 남았다. 금빛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나를 보고 미소 짓고 있다. 그러면 됐다.
똥 손으로 '다나에'를 아크릴화로 모사하여 간직하고 있던 나는 올해 5월 내내, 명화 색칠하기 키트로 구입한 '엄마와 아기'에 매달렸다. 손을 떨어가며 돋보기로도 보이지 않아 폰으로 확대해가며 한 칸 한 칸, 한 겹 한 겹 색을 입혀냈다. 오스트리아에서 만나지 못한 그를 내 손으로 새겨낸다. 제대로 된 그림 그리기 기법으로 그린 것은 아니지만 따듯한 색으로 직접 그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던 설렘 가득했던 시간.
012345클림트 '엄마와 아기' 명화 색칠하기 '머물렀던 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풍경 (0) 2021.11.12 가을이 흘러간다... (0) 2021.11.11 샹들리에 (0) 2020.07.07 고요하고 묵직하게- 다카마쓰 공원 (0) 2020.04.29 나오시마의 아침풍경 (0) 2020.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