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egreen 2020. 9. 18. 15:02

 

20180608 제주 보름왓. 수술 직전 친구와. 너무 좋아서 더 서글펐던 기억이 남았다.

 

 

 

윗몸일으키기가 안된다. 아무리 아랫배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들썩거려도 일으키기 한 개가 안된다. 너무 운동을 안 해서 배 근육이 하나도 없어졌나 싶었다. 이삼일 맴돌던 고민에 '아! 아랫배가 비었구나..' 싶었다.

 

2018년 6월.

두 번째 암 치료 마지막 과정으로 예방목적 자궁난소 제거 수술을 받았다. 난소를 제거하면 발암 확률을 낮춰서 기대수명을 쪼끔 더 늘릴 수 있단다. 나는 더 살고 싶다기보다 사는 동안 발암으로 항암 과정을 겪고 싶지 않다는 열망에 수술하기로 했다. 난소 제거만 하려 했는데, 곧 50살이 되는 여자에게 굳이 자궁은 역할이 없다고. 혹여 발생할 문젯거리를 고려하면 함께 제거하는 게 어떠냐는 의사의 권유가 있었다. 며칠 생각해보겠다고 했고, 결국 동시 제거하자고 결정했다. 로봇수술이었고, 배꼽과 양쪽 배에 구멍 두 개의 흉터만 남긴 가벼운? 수술이었지만 장기 전절제였다. ('전체 절제'란 무게는 보험사에서 내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보험료 감면여부를 심사하러 심사원이 친히 가정방문해 주었다.)

 

결론적으로 난 상실했다.

양쪽 가슴 일부와 이젠 자궁과 난소까지.

마음까지도.

 

어릴 적 하도 아들 아들 하는 아버지가 미워 나도 아들이 되었으면 했다. 여자라서 해야되고, 안 되는 이유가 듣기 싫어 차라리 남자였으면 했다. 초주검 되는 생리통이 무서워 생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달고 다녔다. 하늘이 내린 벌인가. 아니면 하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 건가.

 

나는 여성성을 모조리 잘라냈다. 

짧은 머리를 가진 화장기 없는 얼굴을 거울에서 마주하면  '너는 누구냐?' 싶다.

내 정체가 뭘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내가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얼마나 더 비워내야 하늘에 닿을 만큼 가벼워지는 걸까.

얼마나 더 중심을 세워야 내 마음의 발이 땅을 단단히 딛고 일어서게 되는 걸까.

 

 

20200918

 

 

20180607 제주섭지코지. 동쪽 끝 바다와 하늘은 그날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