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
하얀 달
annegreen
2020. 11. 27. 17:22
겨울이다.
맑은 하늘로 시작해서 이른 오후가 되면 흐려져, 오전 빨래를 쉬이 말리지 못하는 낮고 짧은 해가 지나다니는 계절.
오늘은 마구 써 놓고 묵혀있는 내 글을 읽다가, 생각을 조금 뒤적이다가, 다른 작가님들의 멋진 글로 감동했다가 시큰해진 눈으로 창 밖을 자주 내다봤다.
반쪽만 맑게 닦인 창 너머, 하늘색 하늘이 오후 늦게까지 머무르고 있는 걸 틈틈이 확인하다가 오후 5시 즈음 내다본 하늘 구름 몇 점 사이로 하얀 달이 걸려있는 것을 목격했다. 연회색 구름 두 개가 바람에 흘러가고 은색으로 빛나는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하얀 달'을 본 적이 있었던가.
물론 있었겠지만, 이렇게 가슴속으로 훅하고 휘영청 떠오른 하얀 달은 처음인 것 같다. 그녀는 은빛에 가까운 순백색, 보름달에 가까운 둥근달의 모습으로 흐린 하늘색 하늘로 서서히 밀고 올라왔다.
저 맞은편 하늘엔 붉은빛 해가 져내릴 것이고, 이 하늘 하얀 달은 금빛을 빼앗아 삼키며 떠오르고 있다.
아름다운 순간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모처럼 맑은 겨울 오후 하늘 덕인지, 희고 고운 달 덕인지, 어느 분의 추천으로 종일 듣고 있는 라나 델 레이의 노래 덕인지.
정말 오랜만에 나는 새 글을 만났다.
202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