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을 걷다가...
삼사 일을 현관문 한 발자국을 나가지 않다가 급히 나섰다.
날씨는 맑았고, 바람은 차갑게 조금 세게 불었다.
발 밑에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을 내려보며 모담산 오르막길을 오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문득 고개 들었더니..
거기 나무가 있었다.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낸 나무들. 때로는 부러진 앙상한 가지를, 때로는 높이 솟구친 단단하고 굵은 가지를, 옆구리에 흠을 새긴 옹이를, 꼭대기에 숨어있던 빈 새둥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나무들. 넓고 푸르렀던 잎은 마르고 오그라진 갈색으로 변했고, 누래진 잎새로 뿌리 발등을 빈틈없이 덮고서 그들은 차르르륵 바람 샤워를 하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을 온 둥치를 타고 검갈색으로 흘려보내며 서있었다.
숲 속 나무들이 가장 약할지도 모를 자기자신을 드러내는 이 계절, 나는 본다.
매섭게 휘둘러대는 바람에도 바르르 몸을 떨어댈 뿐, 꺾이진 않는 것을.
사이사이로 쨍하게 스며드는 파란 하늘을 품어내고, 살풋한 바람에도 깨질 듯한 살얼음을 머리에 이고 성큼 다가와 기대 오는 강물을 꽉 껴안는 모습을.
지나간 계절 속에서 풍성하여 넘쳐났던 자신들을 덜어내고 떠나보내며 이제 차라리 홀가분해 보이는 하늘과 나무와 강물, 그들 사이로 일 년 중 가장 약해진 햇빛이 어루만져주며 봄까지 견뎌낼 것을 격려한다. 어느 계절보다 그들은 선명하게 어우러져있다.
겨울엔 서로의 약해진 모습을 드러내고, 위로하고 위로 받으며, 견뎌 낼 수 있는 힘을 단단하게 저장한다.
토닥토닥 소리내며 땅을 힘차게 밟고 걸어본다.
고마워, 단단한 땅아.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아.
내가 흘러지나가는것에 아는 척해줘서.
숲은 겨울이 있어 화려한 여러 계절 옷을 입는다.
겨울...
숲은 수수해서 가장 우아한 모습으로 잠들어있다.
202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