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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인 3월 말 즈음 동네 산책길에 길쭉길쭉 어두운 갈색 나무 사이로 진달래빛이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꽃잎이 산책로로 툭 떨어져 있을 때면 밟지 않으려 조심했다. 꽃잎이 참 여리다.
진달래가 여기저기 툭툭 앞다투어 피어나기 시작하면 땅 위 갈색 나뭇잎을 뚫고 제비꽃이 보랏빛 얼굴을 치켜올린다. 요 아이는 연둣빛 잎도 달고 있다.
4월 2일, 이틀전 산책길에도 아직 입을 앙다물고 있었던 기억인데 오후 산책을 나섰더니 우리 동네 벚꽃이 활짝 웃고 있다. 그것도 함박웃음이다. 앙상한 가지가 메말라 보여 이러다 올해엔 꽃이 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틀 사이 자연은 마술을 부려놓았다. 연분홍 진분홍 흰 분홍 갖가지 분홍 천지 세상이 메마른 갱년기 여자의 마음에 꽃비를 수놓아준다. 황홀하다. 고개를 들어 올려 자꾸 쳐다보고, 되돌아본다. 갑자기 축복받은 기분이다. 꽃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내 마음도 함께 따 가 주오...
산 진달래가 꽃잎을 떨구며 연두 잎을 남겨놓은 모습을 보며 길을 탄다. 내친김에 한강 조류 생태공원 산책길을 걷는다. 봄맞이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맑은 하늘빛이다. 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작은 길 한쪽엔 레몬 옐로 개나리꽃이 다른 한쪽엔 실크 화이트 조팝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갈색 억새가 배경화면이어서인지 조팝꽃이 더 아련하게 다가온다. 겨울을 건너 '나 여기 있소!' 하며 생존신고를 참으로 아름답게 건네는 조팝꽃을 사진으로 담아본다. 봄꽃은 받쳐주는 잎이 없어서인지 너무나 약해 보인다. 버석하고 물기 없어 보이는 마른 가지에 꽃을 피어 올려놓는다. 꽃을 터뜨리기 위해 나무는 아팠을 것이다. 마른 입술이 터져 핏방울을 스며 올리듯 꽃나무도 그러했으리라. 귀한 꽃이다. 꽃잎 한 알 한 알 쉽게 피어올라온 것은 없다. 참 귀한 생명이다.
우리 동네에는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길 가장자리 산수유가 가장 먼저 봄을 알렸다. 늦가을과 초겨울까지도 빠알간 열매를 조롱조롱 달고 있다가 열매를 떨궈낸 자리에 따스한 바람이 살짝 스치자마자 노랑이를 알알이 가지 위에 맺혀냈다. 그녀를 만나면 생강나무 꽃의 안부도 궁금해진다. 생강나무는 본가지에 딱 붙여 꽃을 피워내고, 산수유는 곁가지를 솟아낸 끝에 꽃을 달아둔다. 친구가 생강나무 가지 끝을 살짝 분질러 냄새를 맡게 해 준다. 생강 냄새가 난다.
겨울나무 사이로 찬바람을 휘감고 날카로운 춤사위를 풀어내던 모담산을 좋아한다 고백했지만 꽃바람을 살랑살랑 내 귀, 내 코, 내 눈 속으로 스며들어 부드럽게 안아주는 봄 차림 그의 모습에 마음이 울렁울렁 아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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