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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구멍 속에 밀어넣다.My story 2021. 3. 10. 15:07
20210309 모담산을 걷다가 봄이 삐죽삐죽 고개 내미는 아직은 겨울.
야트막한 산 좁은 길을 타박타박 걷다가 나무 둥치가 터져 옹이가 떨어져 나가 움푹 들어간 큰 구멍 두 개를 발견했다. 딱따구리가 집을 지었나 하고 갸웃하며 지나가려다 되돌아 가서 폰 카메라로 사진 두 장을 찍었다. 어른 주먹 한 개는 족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을 마음속에 넣고 다시 길을 걸으며 생각을 모락모락 피워 올려 구멍 속으로 밀어 넣어본다.
지난 몇 달간 내 마음속을 강타하고, 어지럽히고, 머리 조아려 간절히 기도하게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이 있었다. 나 자신이 아팠던 시간만큼, 아니 어쩌면 더할 두려움과 힘듦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아픔에 무너지고 녹아 없어질 지경이다. 걷고 또 걸으며 이 감정의 맨 밑바닥은 어디서부터 인가 생각해 본다.
국민학교 시절 어린 나는 방과 후 세차게 달려 한 달음에 집으로 오면 '엄마'하고 대문을 박차고 들어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가 이웃집에 놀러 가셨든, 장을 보러 가셨던 간에 일단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엄마를 찾아다녔다. 한마디로 엄마 껌딱지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엄마를 잃을까 두려웠던 것 같다. 어릴 적 매우 자주 엄마가 사라지는 꿈을 꾸었던 기억이 난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멈추어 선 기차 속을 샅샅이 찾아봐도 엄마가 없어 울며 깨어났던 적이 꽤 있었다. 엄마랑 손 잡고 갔다가 큰 집에 나를 두고 갔던 기억도,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맡기고 시내 볼 일이 있어 먼지 일으키는 버스를 타고 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은 서너 살의 기억임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는 떠나가는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아주 많이 두려웠던 것 같다.
엄마는 내 나이 스물둘에서 셋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거짓말처럼 갑자기 돌아가셨다.
엄마를 떠나보낸 슬픔을 꿈속에서 그렇게 많이 시뮬레이션을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삼십 년 동안 떠나보내지 못하고 가슴 깊이 담고 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슬픔을 너무나 큰 두려움으로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내가 사랑하는 자,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든 것의 상실감을 날 것 그대로 내 아픔으로 오롯이 받아들인다. 잃어본 기억이 얼마나 아픈가를 알기 때문에. 남편이 말한다. 너를 잃고 아파할 사람들도 생각하라고. 너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돌아보라고.
나무 둥치에 옹이가 떨어져 나가고 파여있는 상처 속에 내 아픈 기억들을 얘기한다. 이미 패인 상처는 아물지도 않을 터이고, 새순이 돋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 속에 새겨놓은 옹이구멍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그 속에 밀어 넣어 놓은 내 아픈 기억을 글로 남겨 또 기억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든 떠나보낼 수도 있으며, 나 자신도 떠나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남은 자들이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까지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걱정과 상처를 밀어 넣어 놓은 나무 둥치에 새겨진 옹이구멍을 마음으로 닫고 쿨하게 지나쳐야 할 시간.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지금 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