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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들어가다.My story 2019. 11. 14. 14:16
고여 있는 공기를 숨쉬기가 더 이상 참기 힘들 때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발 편한 신발을 신고 세상으로 걸어 나온다. 뭔가 거창하게 '세상'이라 말하지만, 기껏해야 우리 동네 한 바퀴 일 뿐이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과 풀이 다르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다르고 나무의 잎 색깔도 다르며, 깊이 들이마시는 공기의 밀도도 향도 다르다.
11월에 들어서니 차갑고 알싸한 겨울 시골향기 비슷한 것이 언뜻 코 점막에 다다른 것도 같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계절의 향을 느끼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무디고 무뎌져 미각도 후각도 데면데면해졌다.
사는 게 시들해진다. 재미없고 설렘도 없는 하루를 쌓아 앞으로 몇십 년을 어떻게 살아내나 하는 생각도 불현듯 든다. 갈색 자주색 올리브색 나뭇잎들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내 운동화와 교류한다. 진노랑색 연갈색 바랜 녹색 나뭇잎들이 살랑살랑 차라락거리며 물빛 하늘과 속삭인다. 갈비뼈 사이사이 고여 있던 검정 이산화탄소를 뱉어내고 에머럴드빛 산소를 천천히 들이마셔 본다. 아파트 숲을 빠져나와 울긋불긋한 공원너머 단독주택 정원을 기웃거리며 화초들의 안부를 눈으로 확인하기도 하고, 남의 새집 짓기가 얼마큼 되어 가는지도 슬쩍 훔쳐보기도 하며, 주민센터 근처 큰 국화 화분과 사랑에 빠진 몇 마리 벌과도 안녕 인사를 나누며 세상으로 나와본다.
소리가 없다.
그저 귀에 꽂은 좋아하는 연주자의 연주와 노래만 반복 재생되고 길 위, 작은 소음들만 있을 뿐. 요즘 자동차 클락션 소리도 아스팔트 위에서 사라졌다. 거의 100시간에 가깝게 ‘나’와 상대가 마주 앉은 온기 담은 소리가 부재중인 세상은 세트장 같다. 문을 힘껏 열고 동네 세상으로 나왔더니 여기는 커다랗고 네모난, 투명하고 동그란, 진공상태의 세모난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나'란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점 하나 크기만큼도 안 된다는 생각이 울컥 들 때면 오래된 노트북의 전원을 꾹 누르고 부팅을 오래 기다린다. 길쭉하게 깜빡이는 커서로 들어갈 세상 문을 토닥토닥 두드려본다. 꽉 막혀 답답한 뇌혈관을 뚫어내고 뿌연 막을 걷어내어 기억과 추억의 해마를 되살리려 노력해본다.
가을이 깊어진 오늘은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갓 나온 연시홍시를 보고 돌아가신 지 1년 된 시어머니가 뚜렷한 다홍빛으로 기억났다. 아흔일곱 어머니의 보드라운 젖가슴을 타고 전해지던 하얀 온기의 추억을 시린 손끝으로 또닥또닥 새겨본다.
침상에 잠든 듯 조용히 누워 계시던 모습에
"저 슬픈 곳에 계시는 내 아버지 당신은, 바라옵건데, 당신의 사나운 눈물로 이제 저를 꾸짖고 축복하여 주소서.
저 좋은 밤으로 순순히 다가가지 말아 주소서. 어스러져 가는 빛에 맞서서 진노하고, 또 진노하여 주소서. "
딜런 토마스의 시구를 떠올리고 명치끝에 흐르는 눈물이 휘몰아치던 시간들을 글자로 토해내며 나는 세상을 향해 소리 낸다.
나란 미물이 이 세상에 아직 살아 있음을. 그리하여 그녀를 기억하고 기억의 전달자가 되어야겠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본다.
소리는 없다.
그저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와 내 마음의 소리만 들끓을 뿐.
진회색으로 칠해진 바탕화면 세상과 마주 앉은 나는 5차원에서 3차원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소리쳐도 바라봐 주는 이가 없는 이상한 차원의 세상에 들어와 있다.
나는 가끔 이산화탄소로 목구멍이 막히거나 생존을 인증받고 싶을 때면 손끝에 자판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세상으로 들어가 본다.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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