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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 병원에서 30분 더 멀어진 곳으로 이사를 결정하기는 망설임이 약간 있었다.
결혼 20여 년 만에 처음 서울을 벗어나며 가장 염두에 둔 것은 푸른 산책로와 공기였고 반면 가장 두려웠던 것은 병원과의 거리였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피톤치드 가득 품은 산이 있는 시골을 권한다. 하지만 진작 아픈 이들은 병원에 가깝게 살며 몸에 이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빨리 도움받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치료 후 생활하기에 좋은 공기와 유기농 음식재료와의 접근이 쉽고,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추구하지만, 한 번씩 병원 갈 일이 생기면 왕복하는 과정이 몹시 지치는 일이라 병원에 되도록 가까이를 선호한다고 한다. 나도 병원 가까이를 염두에 뒀지만, 멀어지더라도 지인들이 가까이 있고, 운동 싫어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야트막한 산과 한강이 가까이 있는 외곽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이사 후, 첫 검진은 2019년 1월에 있었는데 오전 7시 30분에 집을 나와 저녁 8시 즈음 귀가를 했다.출근 러시아워 막히는 도로 탓에 30분 버스 탑승이 70분으로 늘어났고, 지옥철을 거쳐 병원 도착까지 거의 2시간이 걸렸다. 아침 공복에 당연히 나는 멀미를 했다.
두 번의 암 치료로 양쪽 유방수술을 받은 나는 arm save로 혈압측정, 채혈, 주삿바늘 삽입 모두 두 팔을 피해서 주로 다리와 발등을 이용하게 됐다. 여기서부터 나는 마음이 서운해진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괜히 서럽다. 채혈 공간도 따로 불려 간 구석 칸막이 안에서 다리를 올리고 한다. 1년 차 검사는 복부 CT, 뼈스캔, MRI가 있어 대바늘 주사 키트를 발등에 달고 있어야 한다. 발등은 혈관 잡기도 쉽지 않아 몇 번의 시도와 두드리기로 피멍의 흔적을 남긴다. 죽거나 숨어버린 혈관을 한 번에 잡아내는 간호사께는 정말 감사할 일이다. 발등에 주사 키트를 달고 몇 시간 동안 검사실을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무뎌지는 내 가슴에 또 다른 피멍을 남긴다. 발끝에 걸쳐놓은 슬리퍼로 걷기가 쉽지 않아 결국 휠체어로 이동하는 그 시간들은 전혀 괜찮지 않다. 주입액으로 시퍼렇게 퉁퉁 부은 발을 내려다보자면 희미해지고 있었던 지난 10년이 선명하게 붉은 울컥함이 되어 가슴을 치달아올라 목구멍을 아리게 한다.
밀린 예약 사정으로 오후 늦은 MRI 검사를 마치고 보호자로 온 딸아이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 돌아갈 길이 또 퇴근시간 러시아워와 겹쳐진다. 병원 근처 호텔에서 1박을 할까 싶은 마음을 누르고, 그래도 내 방에 가서 다음날 아침 늦잠을 자고 싶다는 열망으로 귀가를 결정한다. 울렁거리는 속으로 집으로 가는 길이 참 멀게 느껴진다. 조영제 탓이야... 를 자꾸 중얼거린다. CT와 MRI는 일단 조영제가 투입된다. 나는 별다른 큰 부작용은 없으나, 차가운 주사액이 싸늘하게 혈관을 훓어내리면 후끈 달아오르는 아랫도리와 손등 발등 혈관이 툭 터지는 듯한 환각을 가끔 가진다.
10년 전, MRI 통속에서 40여 분간 헤드폰을 통해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래를 반복해 듣고 나는 하마터면 통 속에서 오열할 뻔했던 적이 있었다. 나오면서 방사선 기술사에게 음악을 좀 바꾸셔야겠다고 얘기까지 하고 나왔는데, 이후 그 경험을 이야기 나눠봤던 같은 병원 환우 중 어느 누구도 음악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10년이 지나고서야 나의 환청이었나 싶다. 조영제의 부작용인가? 10여 년 동안 병원을 제 집처럼 들락날락거리며 있어왔던 많은 기억들이 어떤 것은 사실이었고, 어떤 것은 나의 환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니 지나간 모든 기억을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내 기억은 10년 만에 신뢰를 잃었다.
병원 다녀오는 일은 이래저래 유쾌하지 않은 머나먼 길이다. 다녀오고 이틀을 몸살 했다.
2019년 7월 19일 금요일, 새로운 암 발생 후 1년 6개월 차 검사를 받았다.이번엔 폭우로 정체된 버스 탓에 또다시 2시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채혈도 없고 발등 주삿바늘도 없이 폐 X-ray, 유방 X-ray, 유방 초음파만 간단히 검사받게 되어 기쁘다. 열흘 후 담당 주치의 교수님으로부터 '괜찮습니다!' 하는 확인 도장을 꾸욱 받고 돌아온다.
5년 차까지 6개월마다, 이후 1년마다 꼬박꼬박 정기검진을 받았지만, 8년 차에 새로운 암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확인 도장을 받으니 기분은 좋아진다. 6개월 후 있게 될 2년 차 검진예약을 하고 빠르게 병원문을 벗어난다. 병원은 얼른 나서는 게 능사다. 회전문을 나서니 가장 싫어하는 뜨겁고 습한 공기가 훅 들어온다. 그래도 6개월을 또 보장받았다.
20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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