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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황순원.......별3short story... 2012. 4. 1. 12:58
*누구나 맘속에 자기만의 '별'을 갖고 있겠지요....
비록 세월에 퇴색되어 그 빛이 흐려졌을지라도, 내 맘속엔
아직도 그 빛을 잃지않은 '별'하나가 반짝입니다...
한 자 한 자 두들기면서..그 맘의 별을 생각해 봅니다...
영원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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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의 소년이 된 아이는 뒷집 계집애보다 더 이쁜 소녀와 알게 되었다.
검고 맑고 깊은 눈하며, 깨끗하고 건강한 볼, 그리고 약간 노란 듯한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숫한 향기.
아이는 소녀와 함께 있으면서 그 맑은 눈과, 건강한 볼과 머리카락 향기에 온전히
홀린 마음으로 그네를 바라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소녀 편에서는
차차 말없이 자기를 쳐다보기만 하는 아이에게 마음 한구석으로 어떤 부족감을 느끼는
듯했다.
하루는 아이와 소녀는 모란봉 뒤 한 언덕에 대동강을 등지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언덕 앞 연보랏빛 하늘에는 희고 산뜻한 구름이 빛나며 떠가고 있었다.
아이가 구름에 주었던 눈을 소녀에게로 돌렸다.
그리고는 소녀의 얼굴을 언제까지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소녀의 맑은 눈에도
연보랏빛 하늘이 가득 차 있었다. 이제 구름도 피어나리라.
그러나 이때 소녀는 또 자기만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아이에게 느껴지는
어떤 부족감을 못 참겠다는 듯한 기색을 떠올렸는가 하면, 아이의 어깨를 끌어당기면서
어느 새 자기의 입술을 아이의 입에다 갖다 대고 비비었다.
아이는 저도 모르게 피하는 자세를 취하였으나 서로 입술을 비비고 난 뒤에야
소녀에게서 물러났다.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이는 거친 숨을 쉬면서 상기돼 있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소녀는 아이에게 결코 아름다운 소녀는 아니었다. 얼마나 추잡스러운 눈인가.
이 소녀도 어머니가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이는 소녀에게서 돌아섰다. 소녀는 실망과 멸시로 찬 아이의 기색을 느끼며
아이를 붙들려 했으나 아이는 쉽게 그네를 뿌리치고 무성한 여름의 언덕길을
뛰어내릴 수 있었다.
하늘에 별이 별나게 많은 첫가을 밤이었다.
아이는 전에 땅 위의 이슬 같이만 느껴지던 별이 오늘 밤엔 그 어느 하나가
꼭 어머니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수많은 별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곧 안에서 누구를 꾸짖는 듯한 아버지의 음성에 정신을
깨치고 말았다. 아이는 다시 하늘로 눈을 부었으나 다시는 어느 별 하나가
어머니라는 환상을 붙들 수는 없었다.
아쉬웠다. 다시 아버지의 누구를 꾸짖는 듯한 음성이 들려 나왔다.
아이는 아쉬운 마음으로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 오는 창 가까이로 갔다.
안에서는 아버지가,
"두번 다시 그런 눈치만 뵀단 봐라, 죽여 없애구 말 테니, 꼭대기 피두
안 마른 년이 누굴 망신 시킬려구."
하는 품이 누이 때문에 여간 노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좀한 일에는 노하는 일이 없는 아버지가 이렇도록 노함에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에 틀림없었다.
의붓어머니의 조심스런 음성으로,
"좌우간 그편 집안을 알아보시구레."
하는 말이 들려 나왔다.
이어서 여전히 아버지의,
"알아보긴 쥐뿔을 알아봐!"
하는 노기 찬 음성이 뒤따랏다.
이번엔 누이의 나직이 떨리는 음성이 한 번,
"동무의 오래비야요."
했다.
"이젠 학교두 고만둬라."
하는 아버지의 고함에, 누이 아닌 아이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누이가 호리호리한 키에 흰 얼굴을 한 청년과 과수노파가
살고 있는 골목 안에 마주 서 있는 것을 본 일이 생각났다.
그 때 누이는 청년이 한반 동무의 오빠인데 심부름을 왔었다고 변명하듯
말했고, 아이는 아이대로 그저 모른 체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누이같은
여자와 좋아하는 청년의 마음을 정말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청년과 누이가 만나는 것을 집안에서도 알았음에 틀림없었다.
지금 안에서 의붓어머니의 낮으나 힘이 든 음성으로,
"얘 넌 또 웬 성냥 장난이가!"
하는 것만은 이제는 유치원에 다니게 된 이복동생을 꾸짖는 소리리라.
요사이 차차 의붓어머니가 어렵고 두렵기만 한 게 아니고 진정으로 자기네를
골고루 위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아이는, 동복인 누이의 일로
의붓어머니를 걱정시키는 것이 아버지에게보다 더 안됐다고 생각됐다.
다시 의붓어머니의 조심성 있고 은근한 음성으로,
"너두 생각이 있갔디만 이제 네게 잘못이라두 생기믄 땅 속에 있는
너의 어머니한테 어떻게 내가 낯을 들겠니. 자 이젠 네 방으로 건너가그라."
함에 아이는 이번에는 의붓어머니의 애정에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정말
누이가 돌아간 어머니까지 들추어 내게 하는 일을 저질렀다가는 용서 않는다고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어디서 스며오듯 누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다.
"두번 다시 이런 일만 있었단 봐라, 초매(치마)루 묶어서 강물에 집어넣구
말디 않나."
하는 아버지의 약간 노염은 풀렸으나 아직 엄한 음성에, 아이는 이번에는
또 밤바람과 함께 온몸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꽤 쌀쌀한 어떤 날 밤이었다.
의붓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애걸하다시피 하여 학교만은 그냥 다니게 된
누이보고 아이가,
"우리 산보 가."
했다.
누이는 먼저 뜻하지 않았던 일에 놀란 듯 흐린 눈을 크게 떠 보이고 나서
곧 아이를 따라나섰다.
밖은 조각달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불어올 적마다 별들은 빛난다기보다 떨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앞서 대동강 쪽으로 난 길을 접어들었다. 누이는 그저 아이를 따랐다.
어둑한 속에서도 이제 누이를 놀래어 주리라는 계교 때문에 아이의 얼굴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강둑을 거슬러 오르니까 더 써느러웠다.(서늘한 느낌을 주는 데가 있었다.)
전에 없이 남동생이 자기를 밖으로 이끌어 낸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눈치로,
그러나 즐거운 듯이 누이가 아이에게,
"춥디 않니?"
했다.
아이는 거칠게 머리를 옆으로 저었다.
젓고 나서 어둠으로 해서 누이가 자기의 머리 저음을 분간치 못했으리라고
깨달았으나 아이는 그냥 잠자코 말았다. 누이가 돌연 혼잣말처럼,
"사실 나 혼자였다믄 벌써 죽구 말았어, 죽구 말디 않구, 살믄 멀하노.......
그래두 네가 있어 그렇디, 둘이 있다 하나가 죽으믄 남는 게 더 불쌍할 것 같애서......
난 정말 그래."
하며 바람 때문인지 약간 느끼는 듯했다.
아이는 혹시 집에서 누이의 연애사건을 알게 된 것이 자기가 아버지나
의붓어머니에게 고자질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나 않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누이를 쓸어안고 변명이나 할 듯이 홱 돌아섰다. 누이도 섰다.
그러나 아이는 계획해 온 일을 실현할 좋은 계기를 바로 붙잡았음을 기뻐하며
누이에게,
"초매 벗어라!"
하고 고함을 치고 말았다.
뜻밖에 당하는 일로 잠시 어쩔 줄 모르고 섰다가 겨우 깨달은 듯이 누이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저고리를 벗고 어깨치마를 머리 위로 벗어 냈다.
아이가 치마를 빼앗아 땅에 길게 폈다. 그리고 아이는 아버지처럼 엄하게,
"가루 눠라!"
했다.
누이는 또 곧 순순히 하라는 대로 했다.
그러나 아이는 치마로 누이를 묶어 강물에 집어넣는 차례에 이르러서는
자기의 하는 일이면 누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 항거 없이 도리어
어머니다운 애정으로 따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며, 누이가 돌아간
어머니와 같은 애정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치마 위에 이미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누이를 그대로 남겨 둔 채 돌아서 그곳을 떠나고 말았다.
누이는 시내 어떤 실업가의 막내아들이라는 작달막한 키에 얼굴이 검푸른,
누이의 한 반 동무의 오빠라는 청년과는 비슷하지도 안한 남자와
아무 불평 없이 혼약을 맺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안 되어 결혼하는 날, 누이는 가마 앞에서 의붓어머니의
팔을 붙잡고는 무던히나 슬프게 울었다.
아이는 골목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누이는 동네 아낙네들이 떼어 놓는
대로 가마에 오르기 전에 젖은 얼굴을 들었다.
자기를 찾고 잇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는 그냥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누이가 시집 간 지 또 얼마 안 되는 어느 날, 별나게 빨간 놀이 진
늦저녁 때 아이네는 누이의 부고를 받았다.
아이는 언뜻 누이의 얼굴을 생각해 내려 하였으나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아이는 지난 날 누이가 자기에게 만들어 주었던, 뒤에 과수노파가 사는
골목 안에 묻어 버린 인형의 얼굴이 떠오를 듯함을 느꼈다.
아이는 골목으로 뛰어갔다. 거기서 아이는 인형 묻었던 자리라고 생각
키우는 곳을 손으로 팠다.
흙이 단단했다. 손가락을 세워 힘껏힘껏 파댔다.
없었다. 짐작되는 곳을 또 파 보았으나 없었다. 벌써 썩어 흙과 분간치
못하게 된 지가 오래리라. 도로 골목을 나오는데 전처럼 당나귀가 매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전처럼 당나귀가 아이를 차지는 않았다.
아이는 달구지채에 올라서지도 않고 전보다 쉽사리 당나귀 등에 올라탔다.
당나귀가 전처럼 제 꼬리를 물려는 듯이 돌다가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는 당나귀에게나처럼,
"우리 누이 왜 쥑엔! 왜 쥑엔!"
하고 소리 질렀다. 당나귀가 더 날뛰었다.
당나귀가 더 날뛸수록 아이의,
"왜 쥑엔! 왜 쥑엔!"
하는 지름소리가 더 커 갔다.
그러다가 아이는 문득 밖에서 누이의,
"데런!"
하는 부르짖음을 들은 거로 착각하면서, 부러 당나귀 등에서 떨어져 굴렀다.
이번에는 어느 쪽 다리도 삐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의 눈에는 그제야 눈물이 괴었다.
어느 새 어두워지는 하늘에 별이 돋아났다가 눈물 괸 아이의 눈에 내려왔다.
아이는 지금 자기의 오른쪽 눈에 내려온 별이 돌아간 어머니라고 느끼면서,
그럼 왼쪽눈에 내려온 별은 죽은 누이가 아니냐는 생각에 미치자 아무래도
누이는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머리를 옆으로
저으며 눈을 감아 눈 속의 별을 내몰았다.
도서출판 꿈소담이 2004
출처 : 김태원과부활글쓴이 : annegreen 원글보기메모 :'short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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