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Bell JarMy story 2020. 4. 16. 17:28
'열기와 두려움이 저절로 사라졌다. 놀랍게도 평온했다. 벨 자가 내 머리 위 2미터쯤 되는 곳에 매달려 있었다.
내 몸은 순환하는 공기를 향해 열려 있었다.' p.284
'나쁜 꿈.
벨 자 안에 있는 사람에게, 죽은 아기처럼 텅 비고 멈춰버린 사람에게 세상은 그 자체가 나쁜 꿈인 것을.
나쁜 꿈.
난 모든 걸 기억했다.
해부용 시신, 도린, 무화과 이야기, 마르코의 다이아몬드, 광장에서 만난 해병, 닥터 고든 병원의 사시 간호사,
깨진 체온계, 두 종류의 콩 요리를 가져다준 흑인, 인슐린 투약으로 9킬로그램이 늘어버린 체중, 하늘과 바다
사이에 회색 두개골처럼 튀어나온 바위.
어쩌면, 망각은 친절한 눈처럼 그것들을 무감각하게 하고 덮어버리리라.
하지만 그것들은 나의 일부였다. 그것들은 나의 풍경이었다.' p.316-317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완독 한다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읽는 내내 아팠다. 금발의 실비아가 눈에 선했다. '벨 자'와 함께 읽은 그녀의 시와 드로잉이 온몸에 박혔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하는 젊은 그녀가, 성적장학생인 그녀가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는 수많은 규제의 틀 속에서 흔들리고 부서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와 남자 친구와 남자 친구의 어머니가 숨 막히게 눌러대고 있었고 벗어나고자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규정지어진 선 밖으로 발 내밀기엔 너무나 이성적인 그녀가 겪어내기에 몹시 혼란스러운 세상. 자유분방한 도린처럼 자신을 놓기엔 스스로 쌓아놓은 틀이 견고했고, 주변인-소위 말하는 어른-들의 간섭도 많다. 한밤 중 호텔 옥상에서 다음날 싸들고 귀가해야 하는 모든 옷, 속옷까지도 날려버리는 행위에서 사실은 그녀 자신을 날려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마르코의 다이아몬드를 구슬 지갑에 넣어 어둠 속 진흙탕에 던져버린 다음날부터 그녀는 자신조차 던져버린 듯하다. 지하실 수면제 자살시도로 정신병원을 다니고 휘청이면서도 그토록 갈구하던 그녀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 그녀가 진정 자유를 느낀 순간은 피임기구를 몸에 삽입하고 병원문을 나서던 순간과 처녀성을 던져버리고 끝없이 하혈하던 순간이라니. 미래의 남편을 위해 강요된 순결조차도 그녀에게는 벨 자의 존재였던 것이다.
책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며칠 지난 이제 나는 그녀를 벗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실비아의 수많은 생각들이 살 속 깊이 스며들어 아프다.
'단단한 땅을 1.8미터 깊이로 판 구덩이가 있겠지. 그 그림자가 이 그림자와 하나가 될 테고, 우리 고장의 노란 흙이
흰 바탕에 난 상처를 봉합해주겠지. 다시 눈이 내려 조앤의 새 무덤 자리를 지우리라.
나는 깊이 숨을 쉬고 예전 같은 심장박동 소리에 귀 기울였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p.323-324
'벨 자'를 2019년 12월에 손에 넣고 2020년 3월 즈음 읽기 시작했다.
2010년쯤 그녀의 시 'Mirror'를 처음 접했고 매혹당했다. 그녀의 유일한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그녀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이, 생각이 묘하게 접점을 이루고 있었고, 그녀의 삶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녀를 알지 못했던 과거 어느 시간에 흘려놓은 내 글들이 따라쟁이가 되어 있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정신병원 퇴소 면담실 앞에서 아직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었지만, 에스더 그린우드는 이렇게 되뇌며 방 문을 열고 페이드 아웃된다. 짓이겨 시큼 달 큰 한 장미향을 내게 남기며.
'사람들의 눈이 내게 쏠렸고, 그 눈길은 마법의 실처럼 나를 방으로 이끌었다.' p.325
1963년 1월14일 '빅토리아 루카스'라는 가명으로 소설 '벨 자'를 출간하였고, 2월 11일 서른 살의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속 수잔처럼.
가슴이 저며 내린다.
나의 'Sylvia Plath'....!
20200416
p.s. 실비아 플라스 소설 '벨 자'
출판사: 마음산책
공경희 옮김 (역시 공경희 님!!)
'My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의 도시락 (0) 2020.05.19 나무 둥치를 꺾어 돌아서 (0) 2020.05.08 연필 (0) 2020.04.02 나만의 '어린 왕자' (0) 2020.03.25 세상으로 들어가다. (0) 2019.11.14